** 가면 속의 나 **
창세기 35장 16-18절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잠에 들면 늘 이상한 꿈을 꾸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면을 쓴 사람이 나타나서 걸핏하면 자신의 행복을 훔쳐 가 버리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꿈이었습니다.
즐겁고 기쁜 순간에도 그 가면의 사내만 나타나면 모든 즐거움이 사라지고 불안과 걱정이 휘몰아쳤습니다.
별스럽지 않은 일에도 그 사내만 나타나면 사람들에게 화를 벌컥 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드디어 참고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여 그 사내의 가면을 벗겨내며 소리쳤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기에 나의 행복을 이렇게 방해하며 괴롭히는 겁니까?”
그런데 그 가면 안에 든 얼굴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너무도 놀란 그 사람은 넋을 잃은 채 이런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나를 가장 괴롭혔던 사람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던 것을…….”
(박성철 [희망의 도토리] 中에서)
라헬은 아버지로 인한 분노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사랑을 받기 위해 7년을 기다렸는데 아버지 라반은 야곱을 레아와 결혼시켰습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자는 모습을 7일간 지켜보며 라헬은 절망감과 자괴감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야곱과 사귀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핑계로 야곱과 결혼한 언니레아에 대한 분노는 밑바닥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더욱 언니는 쉽게 아이를 낳은 것 같은데 자신은 늦도록 아들을 낳지 못하자 그녀의 마음은 늘 갈급하게 되었고 모든 일에 분노와 시기심으로 반응하게 되었다.
모든 삶에 상처가 가득한 채 일평생을 살았습니다.
상처가 완전하게 치유되지 못한 채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마음을 바르게 먹었으면 라헬은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기쁨과 행복의 시간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간절하게 기다리던 둘째 아들을 얻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허나 그녀는 자신의 아들 이름을 베노니라고 불렀습니다.
‘고통의 아들’ ‘슬픔의 아들’이라는 저주의 이름 베노니를 자신이 낳은 둘째 아들에게 붙여주었습니다.
이처럼 치유되지 못한 영혼은 자신의 아픔을 자녀에게 남기게 됩니다.
무엇이 라헬을 이렇게 슬프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야곱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여인은 라헬입니다.
허나 그녀는 자신이 받고 있는 사랑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언니에 대한 질투심이 받은 사랑을 감추어버렸습니다.
라헬은 남편인 야곱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평생 아버지로 인한 상처, 그로 인한 분노를 극복하지 못했고 용서하지도 못했습니다.
더불어 언니에 대한 분노와 질투심으로 자신의 삶을 허비했습니다.
그리하여 죽어가는 자리에서 아들의 이름을 고통과 슬픔의 이름 – 베노니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영혼이 입은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하면 평생 내 자신의 삶을 허비하게 됩니다.
분노감에 자신이 망가지고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본 야곱은 ‘베노니’라 불린 아들을 ‘베냐민’이라고 즉 ‘내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고쳐줍니다.
라헬의 마지막 길을 슬픔이 아닌 믿음의 길, 하나님을 바라보는 은혜의 길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야곱이 야뽑강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그의 마음에 있던 마음의 상처를 믿음으로 치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생애에서 치유의 은혜를 입습니다.
병자를 고치시기 전 주님은 선언하십니다.
“너의 죄가 사함 받았다.”
이 말은 병의 치유뿐만 아니라 병으로 인해 생긴 모든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순간은 우리의 영혼에 아픔을 준 모든 상처가 치유되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