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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꽂이를 치우며 **

** 책꽂이를 치우며 **

책꽂이를 치우며
도종환


창 반쯤 가린 책꽂이를 치우니 방 안이 환하다
눈앞을 막고 서 있는 지식들을 치우고 나니 마음이 환하다
어둔 길 헤쳐간다고 천만 근 등불을 지고 가는 어리석음이여
창 하나 제대로 열어놓아도 하늘 전부 쏟아져 오는 것을

** 목사인 덕에 제 방에는 책꽂이가 제법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이사 다니는 동안 가장 짐이 되는 것이 책꽂이와 책들이었습니다.
그러다 10여년 전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많은 책 중에서 내가 지속적으로 보는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이 생각을 품고 몇 주 동안 날마다 책꽂이에 정리된 책들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주석 책 외에는 반복적으로 보는 책은 없었습니다.
물론 서재에 있는 책 중 읽지 않고 배치해 둔 책은 한 권도 없습니다.
다만 일반 서적 중 반복해 보는 책은 시집 몇 권뿐이었습니다.
버리기는 아까워 도서관에 주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등산 가방에 책을 넣고 운동 삼아 도서관으로 매일 20~30여권씩 두 달 동안 날랐습니다.
필요하면 도서관에서 사용하고 불필요하면 다른 도서관으로 보내거나 폐기처분 해도 좋다는 조건으로 동네도서관에서 받아주었습니다.
소설과 에세이부터 나르기 시작하여 역사, 철학, 경제, 사회학, 정치, 문화, 그리고 신학 일부분을 가방에 넣고 이동했습니다.
어느덧 소장하고 있던 책의 3분의 2가 도서관으로 이동되었습니다.
덕분에 책꽂이 여러 개가 비었습니다.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책꽂이를 제외하고 모두 폐기물로 처리했습니다.
책꽂이를 보내고 나니 내 방이 매우 넓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덩달아 마음도 함께 밝아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도종환님의 ‘책꽂이를 치우며’라는 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매우 공감이 왔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창을 반쯤 가린 책꽂이에 자리잡고 있던 책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은 다른 질문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시야와 시각을 가로 막고 서 있는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스스로 답을 했습니다.
아집이었고, 욕심이었고, 소유욕이었고, 지식이었고, 체면치레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자만심이었고, 으스대는 마음이었고, 세상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성장시켜 주고 지탱해 주는 힘이었지만 또한 나의 시야를 반쯤 가리는 책꽂이이었습니다.

다시 질문하며 답을 해 봅니다.
‘가려진 시야로 인해 내가 바르게 보지 못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가치이었고, 방향이었습니다.
양심이었고, 함께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믿음이었고, 하나님의 나라이었습니다.

나를 반쯤 가리고 있는 세상의 책꽂이를 치우고 나니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고 밝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시인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창 반쯤 가린 책꽂이를 치우니 방안이 환하다’
‘창 하나 제대로 열어놓아도 하늘 전부 쏟아져 오는 것을’
하늘이 쏟아져 올 수 있도록 나를 가리고 있는 것들을 치우고, 나의 영혼을 노크하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인생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이승정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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