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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정목사 “항상깨어 있으라” 메세지

** 항상 깨어 있으라 **

누가복음 21장 36절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의학의 발달로 인해 백세를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존 연령이 길어지면서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시간이 점점 길어집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잠든 생활과 같습니다.
죽음이라는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들의 삶은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둔해진 생활은 자신의 미래를 덫으로 옭아맵니다.

반대로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든지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마음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지금 삶을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죽음을 끝이라 여기지 않고 항상 삶의 일부분이라 받아드리고 죽음 넘어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베네딕도 수도원에서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두라”라고 수도사들에게 가르칩니다.
이는 수도자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심어주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삶에서 영적 욕망을 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늘 눈앞에 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안토니우스는 죽기 직전에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날인 듯 사시오. 여러분 자신에게 주의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아는 것과 영적 깨어 있음을 짝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기도하며 깨어 있는 생활이란 영적으로 깨어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넘어 있는 새로운 생명, 부활의 세상을 늘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으로 죽음을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부정적인 단어가 아닌 긍정의 단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긍정의 단어로 죽음을 표현하는 것인지에 대해 케냐에 있는 키쿠유부족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키쿠유부족은 나이든 사람이 자신의 삶이 끝나가고 있음을 깨달으면 그들은 ‘사망’ 혹은 ‘죽음’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긍정적인 말로 표현합니다.
다른 이의 죽음에 대해 그들은 ‘그가 자기 조상들에게로 갔다, 그는 지금 평안히 쉬고 있다, 그는 전능하신 분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비가 결코 그치지 않는 곳에 있다.’ 등으로 말합니다.
특히 비는 비옥함을 뜻하므로 마지막 문장은 풍요로움을 상징합니다.
죽음에 대해서 ‘끝난다’와 같은 부정적인 표현을 피합니다.
이들은 언어에서부터 ‘저쪽을’ 또는 ‘저쪽에서’ 오는 것을 바라본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죽음을 이기시고 새생명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든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기 위해 넘어가야 하는 다음으로,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기에 언제든지 주님을 만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소유하고 가지려고 하는 욕심을 내려놓게 됩니다.
목표를 달성하고, 많은 것을 이루었어도 죽음과 함께 만나게 될 주님을 생각하며 머물지 않고 주님께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영생의 맛을 기억하게 하기에 이 세상이 주는 쾌락과 즐거움에 빠지지 않게 해줍니다.
신앙의 생활은 죽음을 기억하며 깨어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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