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등대 정호승
등대는 바다가 아니다
등대는 바다를 밝힐 뿐
바다가 되어야 하는 이는
당신이다
오늘도 당신은 멀리 배를 타고 나아가
그만 바다에 길을 빠뜨린다
길을 빠뜨린 지점을
뱃전에다 새기고 돌아와
결국 길을 찾지 못하고
어두운 방파제 끝
무인 등대의 가슴에 기대어 운다
울지 마라
등대는 길이 아니다
등대는 길 잃은 길을 밝힐 뿐
길이 되어야 하는 이는 오직
당신이다
– ‘내가 잘 살고 있나?’
나도 모르게 자신의 길을 돌아보는 순간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애쓰며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나를 향해 수군거리는 소리가 날 때입니다.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면 순간적으로 길을 보지 못합니다.
길을 잃기도 하고, 잊기도 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걸어온 길이 맞는지,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길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시인은 ‘바다에 길을 빠뜨리고 그 지점을 자신의 뱃전에 새기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수단과 도구를 길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배는 내가 타고 가는 인생의 도구이고 수단이며 방법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를 길로 착각합니다.
인생을 위해 타고 있고, 사용하고 있는 배를 걸어온 길, 가야 할 길로 생각하는 순간 길을 잃게 됩니다.
혹시 인생을 위해 이용하는 배를 길이라고 생각하고 배의 가장자리에 목적지를 기록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을 길이라 여기지 않고 물질, 부동산, 명예, 욕심이 성공이 길이라 여기고 뱃전에 기록하며 살아오지는 않으셨는지요?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시인은 당당하게 말합니다.
“길이 되어야 하는 이는 오직 당신이다.”
타고 가는 배는 길이 아니라 내 자신이 길이라고 말합니다.
‘길이 되어야 하는 이는 오직 당신이다’는 시인의 외침에 살아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스스로 길이 되어 걷고 있는지, 나의 길을 가고 있는지, 방향을 보며 길을 가고 있는지.
그리고 내 자신에게 묻습니다.
혹시 길을 잃었다면 그 길을 찾을 수 있는 등대는 내게 있는 지…….
이 때 들려오는 답이 있었습니다.
길과 진리가 되시는 주님이 들려주신 답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는 이미 세상의 등대인 빛이다.’
그냥 빛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밝혀 빛으로 존재하는 등대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시인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세상의 빛인 당신은 스스로 길이 되어야 한다.’
칼럼리스트 이승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