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인드글라스 **
데살로니가후서 2장 16 – 17절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스테인드글라스
정호승
늦은 오후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높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햇살이
내 앞에 눈부시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나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 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 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
– 정호승 시인은 ‘산산조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부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길래 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일까.
어쩌면 산산조각났었던 자기 자신의 마음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파편처럼 산산조각 난 자신의 삶을 확인하고 싶었는 지 모릅니다.
시인은 산산조각난 자신의 인생 파편을 긁어모아 단어를 만들고 시로 옮겨 적었습니다.
인생 조각에 찔리고 아파하면서 그 고통의 순간을 삶이라는 문장으로 완성해 자신을 기록했는데 그것이 詩이었습니다.
시인은 ‘스테인드글라스’라는 시에서 예배당에 들어가 무릎을 꿇었던 자기 경험을 노래합니다.
높은 곳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햇살이 자기 발치에 떨어진 것을 보며 그는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러다 얼핏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을,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의 삶이 산산조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까닭을 조금은 이해할 인생이 되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처음 가졌던 꿈이 산산조각나고 삶 자체가 파산될 수도 있습니다.
유리는 깨져 산산조각 나도 자신의 본래 속성을 잃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각난 절망의 파편을 꿰맞추고, 부서진 꿈의 파편을 수습하여 깨어진 그 모습을 부여안고 복원하는 꿈을 꿉니다.
절망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견디어 내는 길을 찾았습니다.
견디는 길을 가던 중 시인은 산산조각을 모아서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빛의 길을 찾았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햇살이었습니다.
불행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불행에 상처 입은 마음은 조각난 마음이 되어 자칮 남을 찌르고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힙니다.
깨진 것의 모서리는 날카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지고 상한 마음들을 모아 주님께 바치면 주님은 자비의 빛으로 우리를 감싸주시고 아름다운 빛을 낼 수 있음을 깨우쳐주십니다.
산산조각 난 절망적 상황에서 또 다른 빛을 내는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시어 우리는 아름다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회복된 영혼 조각은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나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이 삶의 방식이 바로 스테인드글라스로 보여지는 아름다운 색채의 인생입니다.
깨진 마음과 영혼이 주의 은혜 안에 있고 주의 은혜로 이어지는 아름다워지는 모습입니다.